*회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얼음 만들기이다. 그 밖에도 쓰레기통 비우기나 바닥 청소 등 할 일은 많지만, 여직원중에 누가 먼저 오든지 간에 얼음을 만든다. 그래야 대표가 도착해서 아이스 커피를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음통에는 얼음이 늘 넉넉히 있어야 한다. 얼음통에 얼음을 부으며 오래전 일을 생각했다. 와르르 쏟아지는 얼음 소리에...
열차가 도착하기 직전에 승강장에 다다랐다. 눈 앞으로 가까워지는 막차를 보며 안심했다. 열차가 지나며 풍기는 여름밤 공기가 취기를 슬쩍 건들고 간다. 승강장에 사람이 많지 않은 걸 보고 한산한 막차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서늘하고 끈적한 공기를 차 안에서도 느끼고 싶었다. 곧이어 막차의 문이 열리자마자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발 디딜 틈 없이 승객이...
23.05.15 지나쳐온 나의 정체성을 외면(거부) 하지 말고 기록(인정) 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특별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서가 아니라(특별한 사람이라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상태-복잡한 정체성, 과거와 배경-를 조금 더 이해하려는 노력에서다.‘솔직한 글(쓰기)’은 독자를 밑바닥부터 전부 꺼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
지옥의 문 세 여자가 지옥의 문 앞에서 만났다. 영문도 모르고 도착한 곳을 두리번 거리다 서로에게 눈이 마주쳤을 때 사신이 등장했다. 당신들은 행복하려했기 때문이야. 이들을 데려온 사신이 말했다. 세 여자는 뭐라 반응을 하려했지만 덤덤하게 현재를 받아들이고 있다. 비명을 지르거나 삶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통곡을 하기엔 과하다고 느껴졌다. 지옥의 문까지 오...
가시 없는 물고기가 느낀 바다 그다음으로 길고 날뛰는 시를 잡으려 했다 삶이 우리를 갈라놓고 육체를 조각조각 가벼운 이미지로 저장하고 같은 곳을 누르고 앗 소리와 취소하고 잠시 멀어지고 다시 돌아와 잠시 머물고 여러 번 반복하다 내려가는 장면에는 끝이 없고 볼 수 있는 너와 볼 수 없는 네가 마주 보는 사이사이 찰나의 감정을 지르고 묵히고 묵힌 고함을 본 ...
이정 작가의 개인전 <공통언어를 향한 꿈>의 도록을 받았다. 작가의 싸인이 있는 한 권은 애인의 것. 나머지 한 권은 내 것. 무채색에 질감이 돋보이는 표지를 보자마자 ‘책이 두 권이 생겼네’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의 처음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도록의 그림을 보니 당시의 분위기가 떠올랐다. 아마도 전시의 마지막 날. 전시장에는 묘한 긴장감이 ...
애인과 강릉 바닷가로 한 달 살기를 왔다. 여행 첫날 숙소에 도착해서 한동안 먹고 마실 식료품을 샀다. 식료품과 짐을 정리하고 나니 사람 사는 집 같았고, 짧은 기간이지만 애인과 동거하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여행 오기 전에도 일주일에 5일 이상을 만났는데, 같이 사는 건 또 다르잖아. 항상 옆에 있는 느낌. 떠나거나 떠나보낼 필요도 없이, 앞으로도 함께 ...
나를 닮은 공간을 꿈꿨다. 정리정돈이 잘돼 있고, 내 물건들로만 채워진 방. 구석구석까지 손이 닿아있고 좋아하는 물건들로 꾸며진 방. 방문이 닫히면 나만의 세계가 열리는 공간. 오랫동안 한집에 살면서 여러 차례 가구 배치를 바꾸고 가구를 구입하고 수납을 고민했다. 좋아하는 밴드의 앨범 포스터와 그림들로 벽을 도배했다가, 전부 뜯어내고 페인트를 칠하기도 했다...
작년 가을. 최고의 가을 날씨를 이대로 보내기 싫었고, 전시는 보지 못하더라도 앞이라도 거닐고자 국립중앙박물관에 갔었다. 자주 못 가도 일 년에 두세 번은 갔었던 이곳 또한 전염병 시대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커피를 하나 사 들고 바람을 맞으며 건물 앞 공원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 대해 글을 끄적였다. 살면서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
<빙과>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미스테리한 일을 추리하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인데. 남주인공이 고교 시절 동안 아무와도 엮이지 않고 조용히 살겠다는 신념을 반하면서 여주인공을 좋아하는 부분만 기억에 남아있다. 마치 평생을 떠돌며 젤리를 퇴치하던 보건 교사 안은영이 사랑하는 사람 곁에 남기로 한 것 처럼. <빙과...
언어의 한계를 느낀다. 실체는 분명한데, 가진 언어가 그것의 일부도 담지 못해 빈약한 소리를 낸다. 바로 앞에 있는 네게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어쩔 수 없는 태도로 한계를 남발한다. 부족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장 써먹는 언어가 어디서부터 온 지도 모른 채. 예쁘다는 말은. 순간순간 달라지는 너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으면. 심장이 눌리듯 당기...
작년 이날, 네로가 2년여간의 지구여행을 마치고 해씨 별(해바라기씨 별)로 돌아갔다.2년 살아도 수명을 다했다고 여겨지는 햄스터가 기운 없이 반년을 더 살아주었다. 그 기간 동안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지냈다. 너는 남은 생을 살고 있는 건데 보너스처럼 이어지는 날들에 감사했다.활달하지 않고 소심한 너는 대부분 잠을 자고 숨어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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